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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3

적어도 이듬해 봄까지 변함 없을 아부재기



1 공명정대하지 못한 세상에 살았다

그렇다고 세상만을 탓할 수는 없었다

사실상 각 개개인의 삶의 문제는

부수적 환경 보다도 개인에게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에 있었다


이 시대 청춘은 

무엇이든 스스로 탐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성공을 성공으로 알고 있었고 

또한 그런 성공을 원했다

 

자아가 없었다

 

2 사회는 더이상 아프지 않으면 청춘도 청춘일 수 없게 만들었고 

성장은 아픔의 과정속에 있다고 했으며

그런 아픔은 속된 말로 성공 이라는것을 앞당긴다했다

 

사랑도 아픔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했다

 

형형색색의 수많은 책들은 청춘의 아픔을 얘기했지만

그 아픔은 되려 경쾌하고 쾌활하게 다가올뿐

청춘을 겉돌던 그 수많은 글들과 표지는

그것을 무기로 청춘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픔을 강요하고 강매했다

 

3 나는 물불을 가릴 줄 몰랐다

겁이 없기도 했거니와, 남 다른 자만이 있었고

또한 그랬기에 

말 그대로 어느 무엇도 판단하고 분간할 수 없었다

자신이 불인 줄 모르고 물을 뒤집어 썼으며

자신이 물인 줄 모르고 불길에 자신을 날렸다

그땐 이런것들이 열정이고 노력이고 사랑인 줄 알았다

 

4 어느날인가

나 역시도 아프지 않곤 살아갈 수 없어 

아프기로 다짐한 날

나는 그날로부터 

더 없이 아픈날을 보내야만 했다

 

5 2014년 유난히 짧은/혹은/짧게 느껴졌던 여름이 끝날 무렵

어느 한가한날의 쌀쌀한 저녁공기는

가을이 왔음을 짐작캐 했다

여태 세상은 파랗고 초록이었지만

그것들은 더이상 내게 파랗고 초록이지 않았다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항상 짙푸르지 못했고

언제나 어디서든 청명한 하늘은 없었으며

작게나마 흐리던가

멍청하게 갈곳 잃은 구름들은 항상 

적게나마 공허한 하늘 귀퉁이를 맴돌았다

 

그리고

난 그런 초가을 엷디 엷은 바람에 춥다며 떨고 있었다

 

6 담배를 태우곤

거무튀튀한 담뱃꽁초 끄트머리를 잡고 벽에 그으면

한 청춘의 생명선이 그어지듯 

무한하지 않은 무안하기만 한 

짧고 굵은 선이 벽돌위에 그어졌다

이럴때면 꽁초는 곧 

자신의 소임을 모두 마쳤다는듯

부러지거나 뭉게져 버렸다

손에는 마치 무언가를 살해한 뒤 베어버린 헐고 쾌쾌한 그것의 피냄새 처럼

담배는 청춘의 한숨을 늘 꼬릿하고 지저분한 냄새로 손가락 마디마디에 새겨 넣었다

그것들은 쉽게 지워지지도 잊혀지지도 않았다

 

일상이 허무했다

 

7 해와 달만이 제역할을 충분히 해 내는듯 보였다

그들은 계절에 맞게 시간을 밀고 당기며 제 역할을 충분히 해 내길 반복했고

나를 둘러싼 기류는 언제나 해와 달이 뜨고 지기를 반복하듯 잔잔했다

 

도시 한가운데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은 마치 모두 거짓 같았다

 

어느 산골자기 낙옆 무더기에 썪어버린 고인물 처럼

나의 생각들과 사상들은 낙후되어가고 썪어가고 있었다

 

8 시는 더 이상 시로서 다가오지 않았다

한낱 글자들의 조합일 뿐 

그것들은 

자신의 세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

나에게 어떠한 메세지도 전하지 못했다

 

나는 확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은 고귀했고 

그들의 아픔은 고귀했으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8 영감을 주던 이는 어느샌가 무미건조해져 버렸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더 이상 그에게서도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없었다

세상이 무채색이 된듯 했다

함께했어도 이지경에 이르렀을까 싶지만

이런생각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9 또 다시

작년보다 길어진 추위 앞에서

또 다시

새로운 봄을 기다려야한다

(........)


휩쓸리듯 4년이 지나갔다 


모든것이 달라졌고

모든것이 변했지만

 

"함께 발 맞춰 가자" 하고 싶지 않다

아직 

난 '나 혼자서도 벅찬듯' 하다